책?

임자헌 -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

통통마녀 2014. 6. 16. 22:29

골찌에게 박수를희망없이 희망을 얘기하는 탁월한 통찰력과 입담

        

                                                                 임자헌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

공자와 맹자, 고전에서 21세기 희망을 만나다

희망없이 희망을 얘기하는 탁월한 통찰력과 입담을 만나다

 

 

 

 

 

페이스북에서 글 좀 쓴다고 이름 난 임자헌 씨의 책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을 완독했다. 무려 나흘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제목이 주는 경쾌한 느낌 때문에 가볍게 집어든 책을 물경 나흘 동안 손에서 놓지 못하고 꼼지락거린 것은 나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다. 하늘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지천명(地天命)을 맞은 내게 서른 중반이라는 저자의 나이는 조금 어설펐다. 나의 삼십대를 돌이켜보아도 그러했다. 미처 여물지 않은 치기와 치밀하지 못했던 허방함으로 내 삼십대의 시간은 군데군데 구멍이 났으며, 숱한 실패와 그로 인한 좌절과 부끄러움으로 채워진 시기였다.

 

본디 인간은 어리석은 동물이어서 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가. 하여 나 역시 나의 삼십대가 어설프고 위태로웠으므로, 너의 삼십대도, 당신의 삼십대도, 임자헌의 삼십대도 그러할 것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글줄 꽤나 읽었기로 서니 서른 중반 언저리의 처자가 공자와 맹자를 논하고, 공맹의 말씀으로 세상을 보고, 듣고, 해석한다는 일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은근 얕잡아 보았던 것이다.

 

, 그것은 나의 실수였다. 이 자리에서 나의 패착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또 반성한다. 그녀는 허방한 삼십대가 아니었다. 당차고 야무지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즐겁고, 유쾌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걸어가는 멋진 여성이었다.

 

저자가 운명처럼 만난 평생의 과업은 한문과 고전이다. 월간지 기자를 하며 고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었던 저자는 서른이라는 꽤 늦은 나이에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연수원에 입학, 생애 처음으로 한문을 공부했다고 한다. 한문세대가 아니었던 저자에게 한문은 그림이자 추상화였고, 넘어야 할 태산이었으며, 결코 채울 수 없는 결여(缺如)였다.

 

내 생각에 결여를 욕심내는 것보다 더 지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애써 도리질 쳐도 결여는 결여인 것이다. 결여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결여를 기어이 메우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도 결여를 직시하는 자세는 아닐 것이다. (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 183)

 

자신의 결여를 쿨하게 받아들인 맹랑 언니는, 그럼 그냥 주저앉았을까?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 되시겠다. 울고 짜며 주저앉았다면 결코 맹랑 언니라고 불릴 수 없지.

그녀는 자신의 빈곳을 채우지 못해 안달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새롭고 전혀 다른 영역을 개척했다. 결여의 빈 공간에 문학적 상상력을 채워 넣은 것이다. 문자로서의 한문을 읽고 해석하는 대신 문장 구성, 글 쓴 사람의 심리, 논리력, 검색 능력 등등을 총동원해 문자로 죽어있던 옛 언어를 심장이 팔딱팔딱 살아있는 21세기의 언어로 부활시키는데 성공했다.

 

못생기면 못생긴 대로, 뚱뚱하면 뚱뚱한대로, 빈 곳이 있으면 빈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자신의 한계를 알고 힘써 노력해 뛰어넘거나, 이조차 버거울 때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내는 놀라운 지혜를 발휘한 그녀는 기어이 평생의 업으로서의 한문의 길에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입학 첫 해 중간고사에서 전교 3(저자의 입학 동기는 모두 3명이었다)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받아든 저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와 낙담대신 자신을 믿고, 시간을 믿고, 묵묵하게 오래 버텨낸 저자는 마침내 공자와 맹자, 논어와 중용이라는 옛 성현의 말씀으로 새로운 언어의 집을 짓는데 성공한다.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은 그 결과물이다.

 

공맹을 논한다 해서 그녀에게서 오래 묵은 종이먼지가 날릴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나름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임을 은근 자랑하는 지은이는 고전이 펼치는 무한 파노라마의 공간에서 스타벅스와 캬라멜 마끼야또, 연애 혹은 밀당, 명품백과 연애의 함수관계 같은 21세기 일상을 건져낸다. 공자를 빌어 이 시대의 이야기, 삼십대 여성의 좌절과 희망, 무겁게 받아든 생을 어떻게 경쾌하게 살아내가 하는가를 전하는 입심을 발휘하는 것이다. 누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뤄진 공자와 캬라멜마끼야또의 만남은 그녀의 말랑말랑한 문학적 상상력이 없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하여 이 야무진 처자는 맹자를 읽다가 연애의 심리전술을 밝혀내고, 처처에 널려있는 러브모텔 네오싸인에서 맹자를 풀어내는 발칙함을 보인다.

.. 이 여인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이며, 이 여인의 탁월한 꼴라보레이숑 능력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은 미로(迷路)같은 책이다. 쉽게 읽히나, 결코 만만치 않은 메시지를 전한다. 책을 여는 문고리는 쉽게 잡힌다. 부드럽게 열리는 문고리를 열어젖히면 맹랑하기 짝이 없는 뚱뚱하고 못생기고 맹랑하기 짝이 없는 언니가 들려주는 수다 폭탄이 쏟아진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가야겠다. 저자가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것은 나의 평이 아니다. 나는 저자와 일면식도 없을 뿐 아니라, 그다지 친밀한 페친도 아니다. 내가 일방적인 팬심을 보이고 있을 뿐, 저자는 내 존재조차 제대로 인지하고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냥 수천 명 페친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집 귀한 딸을 감히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저자가 책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 저자의 외모와 몸매를 종합해서 도출해낸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를.

 

어쨌거나, 저자의 수다를 따라 호호깔깔 웃다보니, 아뿔싸, 나갈 길을 찾지 못하겠다. 너무 깊숙하게 들어왔다. 그까짓 것 하며 말랑말랑하게 시작했던 고전은 <논어> <맹자>를 넘어 <대학> <중용> <시경> <서경>이라는 산맥을 넘고 있는 것 아닌가. 그야말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이라는 거대한 봉우리를 스카이 콩콩 뛰듯 통통 튀며 건너온 것을 발견했다. , 이런... 내가 저 봉우리를 언제 다 넘은 것이냐고~.

 

책이 쉽게 읽힌다는 것은 지은이가 책을 완전히 장악했을 때 가능하다. 책은 수이 읽힌다. 영리한데다 차도녀의 면모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저자는 케케묵은 전략과 전술은 과감히 페기하고, 새로운 약과 술로 독자를 공략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전하는 고전과 일상의 만남은 대충 이러하다. 인생에 서툰 나를 위로한다-논어 연애를 하면 깨닫게 되는 것들-맹자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될까-대학, 중용 달콤 쌉싸름한 옛 노래-시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답게 사는 법-서경 유쾌하고 삐딱한 인생 수업-기타 고전까지 닿아있다. 빛의 속도로 전개되는 고전 편람에 멀미가 나지 않는 것은 그녀가 들려주는 일상의 바로 우리의 그것이고, 그녀가 사용하는 언어가 지금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는 쉽고 재미있게 고전이라는 세계로 안내하는 훌륭한 입문서이다. 이 책이 단순한 고전 입문서로만 쓰여졌다면,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으리라. 지은이가 선택한 고전과 일상의 만남이라는 전략 위에 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안타까움과 한숨, 어두운 시대를 돌파하는 그녀만의 탈출방법도 숨겨 놓았다. 그녀가 결국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는 공자와 맹자는 여전히 유효하며, 공맹의 가르침을 통해 시대의 각자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을 돌파하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유쾌한 목소리로 한문과 씨름해온 숱한 밤들을 얘기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짠한 순간이 있다. 난해한 고전의 봉우리를 넘기 위해 애써왔던 숱한 나날들, 청춘의 시간을 먼지 나는 고전에 코 박고 보내었을 숱한 밤들도 그려진다. 그녀가 홀로 감당했을 막막함도 그려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징징거리지 않았다. 징징거리지 않을 뿐 아니라 결여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혹은 가야할 길을 몰라 방황하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반짠반짝 희망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맹랑 언니의 명랑 고전 탐닉>에서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희망이 없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미로의 출구를 찾았다. 꼬불꼬불한 고성의 수로를 훑고 더듬어 당도해서 잡은 출구 문고리에는 희망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고전과 일상을 버무려 엮어 만든 잘 지은 집 한 채의 서까래에 그녀는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두었음을 책장을 덮으며 깨달았다.

 

책에서 인용한 중용의 한 구절을 옮겨 적는다.

차라리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우기 시작했거든 제대로 배워내지 못했다면 놔버리지 말고, 차라리 묻지 않을지언정 묻기 시작했거든 알게 되지 않았다면 놔버리지 말며, 차라리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하기 시작했거든 답을 얻어내지 못했다면 놔버리지 말고,차라리 분변하지 않을지언정 분변하기 시작했거든 분명하게 분변해내지 못했다면 놔 버리지 말며, 차라리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하기 시작했거든 마음을 다해 진실하게 행하지 못하고 있다면 놔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남이 한 번에 해내거든 나는 백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해내거든 나는 천 번을 할 것이다

 

사서삼경에 코를 박고 옛 성현이 남긴 말과 글의 도저한 물줄기를 따라 오르기 위해 애쓴 시간들이 애틋하고 장엄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논어><중용><맹자>에 깃들어 삶의 지도를 너끈하게 그려낸 당차고 젊은 언니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