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요? 잠깐만 와주셔요. 우리 순돌이가 어디 아픈가봐. 계속 낑낑거리고 서있기만 하네……."
도대체 어디에 전화를 한 것인지 궁금하다. 카페 주인은 강아지가 어디 아픈 것 같다고 말하고선, 바로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여주인의 행동을 지켜보던 나는, 근처에 수의사가 있나보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따라오는 의문.
수의사가 이 산꼭대기까지 왕진오려고? 에이 설마..
일반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못 궁금해하고 있었다.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주인이 전화를 끊고난지 딱 5분 후, '그'가 나타났다. 수의사인가 생각했던 그의 이름은 '김씨'. 동네 고물상 사장이었다.
김 씨는 오랜 가난에 찌든 흔적이 역력하다. 옷은 추레하고, 치괴 문턱에도 가본적이 없는지 앞이빨은 몽창 빠져있다.
그나마 남은 이빨 두 엇도 삭아서 잇몸에 흔적만 남기고 있는 정도다.
그는 카페가 무척 낯익나보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간다.
" 야가 왜 그런댜! "
무심하게 한 마디 내뱉고는, 강아지를 잡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한다.
" 별로 아픈 것 같진 않은디...내, 델꼬 나가서 어디 함 보까! "
주인의 대답같은 것은 필요없는가, 그는 한 마디 툭 던진 후 바로 강아지 목줄을 잡고 밖으로 나선다.
순돌이 녀석도 순순히 따라나서는 것을 보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간 그는 동네 한 바뀌를 돌았나보다.
동네라고 해봐야 한바퀴 설핏 도는데 10분이면 족한 작은 마을.
걷다가 쉬다가, 마실 나온 이웃과 정담이라도 나누었는가, 그는 10분이면 족한 동네 산책을 20분이나
걸려 마치고 돌아왔다.
" 아무렇지도 않어! 돌아댕기고 싶었나보네. "
"그랬어요? 다행이네. 어제 산책을 못시켰거든. 이 녀석이 돌아다니고 싶었나보네. 수고하셨어.
커피나 한 잔 해요. "
나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여기가 부산이 맞는지, 의심에 의심을 해봐야 했다.
그깟 똥개 한 마리가 이상하다는 말에 잠시 가게를 비우고 달려오는 이웃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김 씨뿐 아니다. 카페에 머물렀던 네 시간동안 많은 동네 사람들이 이곳을 들렀다. 대부분 가난한 노인인 그들은
후루룩 소리 내어 커피 한 잔, 쌍화차 한 잔을 마시고 갔다. 마치 안부를 묻듯 카페에 들러 천 원짜리 커피 한 잔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서로에게 고하는 것 같았다.
이곳은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이다.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공간성이 알려지면서 요즘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감천문화마을이 간직한 역사성과 여전한 공동체정신에 반한 한 서울여자가 2년전 이곳에 카페를 차리고 주저앉았다.
감천문화마을 동네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 우인 여주인공 김정희 씨가 주인공이다. 평온한 표정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이다. 그는, 고 최민식 선생이 찍은 감천문화마을 사진을 보고. 이곳으로 달려온 이다.
이웃집 담장을 가리지 않기 위해 애써 지어진 가난한 골목 풍경을 보며,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여전한
이곳이 못견디게 보고 싶었다 한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감천문화마을에서 그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제는 마을주민이 되어 삶을 이어간다.
카페 우인에 머문 네 시간동안 가난을 더께처럼 뒤집어쓰고 있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평화로운 속살들을 잠깐이나마
만날 수 있었다.
감천문화마을의 골목길이 유명해진 것을 동네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빈한하지만 소중하기 이를데 없는 삶의 거처에 물어닥친 유명세라는 바람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미는 예의 없는 관광객들 앞에서 더 외롭지는 않은 것인지...
그러나 걱정은 잠시 밀쳐두고,
봄빛 따사로울 때 다들 다녀오시라. 속 깊이 보고 오시라.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너머 인간에 대한 애잔함이 항상한 곳이리니....